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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16.02.27

읽Go 듣Go 달린다

타이틀은 김연수의 텀블러 제목이다. 인터뷰 내용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그저, 그에 대해 뭔가를 새로 쓴다는 게 내키지 않아서 빌려 왔을 뿐이다. 책과 음악과 온갖 영감의 원천들이 빼곡히 전시된 블로그와 발랄한 산문들과 시니컬한 인터뷰와 종국에 그의 본업인 문장에 대한 집착과 실험정신, 남다른 사유의 굴착으로 빚어진 소설들을 보노라면, 굳이 말이나 글을 보

올해 <원더보이>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하 <파도…>), 두 권의 장편소설을 냈다. 비상식적인 일이다. 나도 놀랐다. 그런데 <원더보이>는 2008년부터 집필한 거다. 쓰다가 끝을 못내서 가지고만 있다가 작년에 끝냈다. <파도…>는 2011년부터 쓴 작품이다. 한 해에 다 쓴 건 아니다.

<원더보이>를 쓰다가 막힌 이유는 무엇이었나? 원래 청소년 잡지에 연재했던 소설이다. <밤은 노래한다>를 쓰고 난 후였기 때문에 이번엔 장난 삼아 아무렇게나 써보자고 시작한 거였다. 그런데 중간쯤 가니까 너무 재밌게 써서 수습이 안 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래서 집필을 중단했다가 원점에서 다시 써보자하고 재미없게 써서 끝을 낸 거다.

어쩐지 전작들에 비해 문체나 스타일이 발랄하다가 마지막에 김연수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원래 결말을 정하지 않고 집필에 들어가나? 예전엔 정해뒀는데 최근엔 그냥 쓴다. <원더보이>의 결말은 고민을 많이 했다. 쓰다 보니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가 돼서 그걸 뜯어말리느라 사투를 벌였다. 등장인물이 분신을 하면 안 되는데 자꾸 분신을 하는 내용으로 가는 거다. 그래서 그만뒀다. 내가 무슨 끔찍한 소설을 쓰고 있나 그러면서. 겨우겨우 끝낸 게 저거다. 어쨌든 끝낸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파도…>는 전혀 다른 건데, 첫 장면만 있고 그 이후는 나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끝까지 가본 거다. 그러다 마지막 장면을 발견했다. 너무 행복했다. 마치 내가 독자인 것처럼 “아,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그랬다. 특이한 경험이었지.

하루에 몇 시간씩 자나? 한 8시간?

의외다. 장편도 꾸준히 내놓고, 잡지에 에세이를 연재하고, 와중에 <빅이슈> 같은 매체에 재능 기부도 하고, 사회활동도 하고, 달리기에 대한 산문집도 냈다. 하루 3시간씩만 자면서 회사원처럼 시간 정해놓고 글 쓰고, 때 되면 운동하고 그럴 줄 알았다. 글 쓸 땐 따로 시간을 정해놓지 않고 24시간 쓴다. 잠자고 밥 먹는 시간만 빼고. 온·오프가 있는데 지금은 오프다. 그래서 책 읽고, 음악 듣고, 글은 거의 안 쓴다. 지금은 외향적인 시절인 거다. 마감에 들어가면 다른 일을 못한다.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을 보면 착한 것과 성실한 것이 콤플렉스였다는 말이 나온다. 당신이 데뷔할 때만 해도 소설가에 대해 그런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다. 요즘은 낫긴 하지만 이 분야에 워낙 개성 강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젊은 시절 튀는 걸 재능이라 혼동하는 일이 빈번하다. 한 20년 지나고 보니 그건 별게 아니더라. 요즘도 그렇게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고 나는 나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지. 결국 어떤 인간이든 소설만 잘 쓰면 된다. 악한 인간이 소설을 잘 쓰면 악해서 잘 쓴다 하고, 이기적인 인간이 잘 쓰면 이기적이어서 잘 쓴다고 한다. 사실 잘 쓰는 데는 이유가 없는 거다.

<꾿빠이, 이상>은 잡지사에 다니는 동안 썼다고 하던데, 그게 참 신기했다. 잡지 기자들 중에 소설가 지망생이 많은데 죄다 실패하더라. 글의 호흡이 다르니까 갈아탈 수가 없는 거지. 쓰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써야만 하는 상황이면 어떤 상황이든 쓰게 되지. 그리고 좋은 잡지사를 다니면 힘들다. 좋은 잡지사는 월급을 많이 주고, 월급을 많이 주면 일을 많이 시키기 때문에 쓸 시간이 없다. 내가 다닌 잡지사는 월급을 쥐꼬리만큼 주는 데였고, 그러니까 일을 대놓고 안 하는 거지. ‘월급도 얼마 안 주면서 뭔 일을 시키냐’ 그러면서 무조건 정시에 집에 갔다. 그래도 아무 말 안 했다, 그 회사는.

워낙 다작을 해서인가, 주변에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전 시기를 다 읽은 사람은 별로 없고, 모두 서로 다른 김연수를 기억하더라. 초기작의 팬들은 ‘포스트모던 학교의 수석 졸업생’(평론가 신형철의 표현)으로 당신을 기억하고,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하 <네가 누구든>)이나 <밤은 노래한다>는 일종의 역사소설처럼 보이기도 했고, 최근작은 보다 사적인 소설로 읽힌다.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변해왔던 건가? 그렇다. 20년 정도 써왔으니까. 책 하나를 쓸 때마다 사람이 조금씩 바뀌는데 16권을 썼으니 16번 바뀌어온 셈이다. 생각도 계속 달라졌고. 지금은 초기에 비하면 관대해진 편이다.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진실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까. 진실이란 게 분명 있을 텐데. 그러다 점점 알게 된 게, 분명한 진실이란 없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기억을 못하고,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삶의 진실이란 무엇일까? 그런데 소설을 계속 쓰다 보니까, 각자의 진실이 따로 있고 그걸 이야기로 만드는 게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니 각자의 진실이 따로 존재한다면 결국 소통이란 불가능한 게 아닌가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런데 가끔씩 사람들이 통할 때가 있단 말이지. 그게 사랑인가 보다… 그런 식으로 변화를 해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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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여자들과 얘기가 잘 통하는 편인가? 글쎄, 남자들보다 여자들을 더 자주 보긴 하지.

남자 작가들이 여자 주인공에 대해 쓰면 독자로서 불편할 때가 많다. 굉장히 닭살 돋고. 그런데 <파도…>는 그런 괴리감이 거의 없었다. 더구나 <파도…>의 주인공은 외국에서 자란 입양아다. 이 정도로 이질적인 정체성을 가진 주인공을 설정한다는 건 모험이 아닌가? 그건 아니다. 써야 할 이야기가 있고, 그걸 피할 수 없으면 써야지. 작가니까. 대신 준비 과정이 오래 걸리지. 내가 얘(소설의 주인공 ‘카밀라’)처럼 돼야 하니까. 보는 방식이 나와는 완전히 다르다. 나 같으면 ‘진실을 반드시 찾고야 말겠어’ 뭐 이런 게 있다. 대결을 하려 들고. 그런데 여자들은 좀 다르더라. 처음에 그냥 썼더니 글이 흉측하더라. 절망스러울 정도로 멍청해서 못 봐주겠더라고. 어떡하지? 도대체 얘를 어떻게 풀까? 그래서 20~30대 여자들이 쓰는 글이나 잡지를 많이 읽었다. 말하는 방식과 시선이 다르더라. 그런 과정이 오래 걸린다. 지금 내 상태로는 (이런 글을) 쓸 수 없다. 고칠 때도 한참 걸렸다.

<파도…>에는 장르소설 같은 요소들이 있다. 주인공이 관련자들에게 피의 복수를 하고 처절하게 끝나면 본격 장르소설이 됐겠지. 의식적으로 그런 경계를 설정하고 있나? 일부러 설정한다기보다 나의 소설관, 세계관과 결부된 문제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지만 이야기들을 모아놓으면 그 차이가 어떤 진실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카밀라가 과거를 알아가는 과정을 여러 명의 화자를 통해 이야기한 것이다. 그런 식이기 때문에 명쾌한 글을 쓸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이 응징을 한다는 건 이 사람이 진실을 알고 있다는 건데, 개인의 차원에서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응징의 대상이 실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수도 있고. 타인에 대해 확신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폭력이다. 세계관이 그러니까 장르를 쓰지 않는 거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결말을 내주는 걸 좋아하지만 그렇게 쓸 수가 없다. 나는.

결말을 안 내리는 작가 중에 가장 상업적인 작가가 아닌가 싶다(웃음). 그러니까(웃음). 이상한 일인데, 나는 (명쾌한 메시지를) 준 적이 없는데 받았다는 사람들이 생기더라.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도 썼는데, 나는 소통에 회의적이다. 심지어 부부 사이라 해도, 사람 관계에서 소통이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다 포기하고, 팔 생각도 포기하고 소설을 쓴 거다(웃음). 짬 날 때마다 돈을 벌어놔야 한다고 생각해서 번역을 계속 하고, 산문도 많이 썼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포기했는데 받았다는 사람들이 있더라. 신기했다. <네가 누구든…>부터였던 것 같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부터는 정말 많아졌고. 그래서 ‘아, 줘야만 받을 수 있는 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줬을 때 못 받을 가망성이 많고. 이번에도 결말을 안 넣었지만 결말을 봤다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장편에선 여전히 인장처럼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화두들이 들어가지만 과거에 비해 좌파적인 색채가 표면에 두드러지진 않는다. 대중과 점점 가까워지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내가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1991년 5월에 생긴 일들 때문이었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이런 세상이면 더 이상 사람들이 살아갈 이유가 무엇인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네가 누구든>을 쓰면서 그 의문이 모두 풀렸다. 최초에 글을 쓰기 시작한 동기가 사라졌으니 이젠 어떻게 소설을 쓰나 걱정이 들 정도였다. 나에게 두 가지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야기 위주의 길을 가든가 전혀 못 쓰든가. 근데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길로 들어선 거다(웃음). 어쨌든 그 거대한 궁금증이 풀렸기 때문에 관심사가 조금씩 달라졌다. 이제는 소설가로서의 정체성이 생겼다. 전에는 소설가로서의 정체성보다는 개인적인 궁금증을 해결하는 데 급급했다. 그런데 지금은 소설이란 장르에 대해 기술적인 문제들을 모두 마스터해보고 싶단 욕심이 생겼다. 장인처럼 매일매일 기술을 연마하고 생각을 해서 정말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소설가니까. 그래서 내가 가진 자연인으로서의 생각, 신념 같은 것은 이제 점점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빠지게 되는 거지. 앞서 말한 화자의 성별 같은 문제도 나한테는 중요하지 않다. 여성 화자를 쓰기로 했으면 최선을 다해서 써야 하는 거다. 여성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파도…>에선 남자가 남자 같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지(웃음).

혹시 말도 여자같이 하고 다닌 건 아닌가? 부인이 막 당황하고(웃음)? 글 쓸 때만 그런 거지(웃음). 근데 확실히 또래 남자들 만날 일이 거의 없다. 상갓집 같은 데서 대학 동창이라도 만날라치면 굉장히 늙어 보이고 매력이 없다. 그래서 가급적 안 만난다. 물들까 봐.

소설의 소재로는 좋지 않나? 전혀. 소설은 매력 없는 소재는 매력 없게, 매력 있는 소재는 매력 있게 보이도록 또렷하게 만드는 게 중요한데, 매력 없는 소재를 매력 없게 보이도록 들이는 노력이 너무 한심하다. 그러다 보니 ‘너는 왜 40대 남자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느냐’라는 지적도 듣는다. 아니, 내가 평생에 몇 권 못 쓸 테고 40대 남자 대표도 아닌데 그런 매력 없는 소재를 뭐 하러 쓰나.

40대 남자는 한국 소설가들이 온통 외면하는 소재지. 외면 받아 마땅한 게, 그들은 책을 안 본다. 책을 봐야 뭘 쓰든가 하지. 그냥 가끔씩 나타나는 돼지처럼 그리면 되는 거다(웃음).

기사에 그렇게 써도 되나? 걔들은 <싱글즈>도 안 볼 거다(웃음).

소설이 당대를 기록해야 하는데 요즘 한국엔 그 역할을 하는 작가들이 별로 없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돈, 사회생활이 갈등의 중심인데 그게 소재가 되지도 않고. 근데 소설이 당대를 기록해봐야 다 왜곡할 뿐이고, 지금은 차라리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기록하는 게 낫다. 파급력도 더 크고. 소설이란 일이 벌어지고 난 뒤 쓸 수밖에 없으니 현장성이 없다. 르포도 아니고. 예전에 다큐를 만들 수 없을 때나 소설이 그 역할을 했지, 지금은 그러기엔 굉장히 비효율적인 장르다. 비판을 하려면야 모든 게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요즘 소설가들은 예전처럼 치열하지 않아서 문제야, 뭐가 어째서 문제야… 그것과 마찬가지 비판이라 생각한다.

남의 책도 많이 읽던데 모아두는 편인가? 예전엔 닥치는 대로 사서 이고 지고 옮기다가 35세 지나면서 버리기 시작했다. 60세까지 소설과 비소설 각각 365권씩만 모으려고 한다. 60이 지나면 그걸 매일 한 권씩 읽어야지. 그 순위 안에 안 들 것 같으면 아예 모으질 않는다. CD도 365개만 남기려고.

순위를 정하려면 어느 정도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나? 현재 기준이 되는 책은? 아직은 읽는 족족 다 꽂는데 기준이 굉장히 높다. 최근 발견한 책은 <토성의 고리>(W. G. 제발트, 창비)다. 3등 정도에 두고 있다.

<백년 동안의 고독>이나 <양철북> 같은 책을 두고 ‘작가가 자신이 뭘 쓰는지도 모르고 쓰는 경지’라고 말한 걸 봤는데, 스스로 그런 순간을 경험한 적은 없나? 매번 그랬는데. 쓰려고 했던 건 이게 아닌데 하면서 결말이 나갈 때가 있지. 근데 그건 좀 다른 문제고, 귄터 그라스 같은 이들이 굉장히 수다스러울 때가 있다. 한 35세쯤 그런 시기가 온다. 기술과 체력이 교차하는 시기. 엄청나게 수다스러워서 문장이 길어지고, 그때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 후엔 점점 기력이 쇠해서 그 정도 수다스럽게는 못 쓰는 거지.

35세가 지났는데, 기력이 쇠하고 있나? 그때처럼 수다스럽게는 못 쓰는 거지. <네가 누구든>이 나한테는 그런데, 딴 데로 가서 계속 막 쓰는 거다. 소설책을 펼쳐보면 시끄러울 정도다. 근데 어쩔 수 없이 계속 떠들어야 하는 거다. 원래 쓰려던 건 그게 아니고, 무하마드 깐수라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연변에서 태어났는데 아랍인으로 위장해서 한국에서 북한 공작원으로 활동하다가 발각된 사람이었다. 그 사람 인생이 너무 드라마틱해서 책으로 쓰려고 몇 번 시도했는데 다 실패했다. 그걸 쓰려고 시작하면 자꾸 딴 얘기를 하고 있더라. <네가 누구든> 끝에 잠깐 써놨다. ‘이 사람에 대해 나중에 다시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지금은 못 쓸 것 같다.

소설로 쓸 수 있는 소재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나? 보통은 단순한 이야기 한 줄을 갖고 시작한다. 대부분은 금방 잊히는데 안 잊히는 것들이 있다. 한 6개월 뒤에도 안 잊히면 단편이 되고, 1~2년이 지나도 안 없어지면 장편이 된다. 한 가지 이야기를 쓰고 있다 보면 다른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럼 머릿속에 갖고 있는 거다. 시인 백석에 대해 쓰겠다고 2005년부터 얘기했는데, 아직 어떻게 써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다가 또 다른 이야기가 붙어서 팡 터질 때도 있는데, 그러면 가망성이 더 커지지. ‘지금 뭔가를 써야겠다. 뭘 쓸까? 서베이를 해보자.’ 이런 식으로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소재를 어떻게 찾느냐고? 소재는 저 혼자 생겨서 발전하는 것이다. 소재가 없다는 것은 이상한 말이지 않나? ‘소재가 없을 리가?’라고 생각한다(웃음).

몇 년 전 어느 소설가가 ‘소재가 없어서 몇 년째 장편을 못 쓰고 있다’고 인터뷰한 뒤 후배의 글을 표절해서 소송에 걸린 일이 있지 않나. 아… 그런가. 나는 소재는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소설이 엄청나게 길기 때문에 기발한 한 줄짜리 아이디어 같은 건 나중에 휘발되어 없어진다. 간단한데 안 없어지는 게 진짜 소재라 생각한다.

간단한 아이디어를 장편으로 발전시키는 것 자체가 작가로서의 테크닉일 수도 있겠다. 그럴 수도 있는데, 요즘은,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구나 하고 놀랄 때가 많다.

백석 시인에 대한 작품은 언제쯤 볼 수 있나? 잘 어울리겠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단계다. 백석이 북한에서 보낸 어느 하루에 대한 이야기다. <남신의주 유동박씨 봉방>(1948년 작)이 그의 마지막 작품인데, 그 후 작품을 안 쓰다가 81년엔가 죽었다. 백석 정도면 시를 안 쓰진 않았겠지. 공화국이고 서정시를 쓰면 안 되는 상황이니까 어딘가에 감춰두지 않았을까? 그게 어딜까? 어디에 감출까? 아님 외워두나? 마음속에? 누구한테 전해주나? 나무에 새기나? 그런 질문을 계속 하고 있다.

그럼 백석에 빙의되어 가상의 시를 써야 하는 건가? 그래야지. 백석 스타일로. 당시 북한 사람들이 느꼈을 서정을 쓴 가상의 북한 소설이다. 하고 싶은 게 그런 거다. 70년대 북한 사람들이 그런 소설을 한 편도 남겨두지 않았는데 누군가 쓰긴 썼다면, 뭘 썼을까? 그 존재하지 않는 소설을 써보고 싶다. 1인칭으로.

앞서 얘기한 소설가로서의 테크닉 실험이 극대화되는 작업이겠다. 취재하러 북한에 가는 건 아닌가? 그건 반칙. 취재 없이 써야지(웃음). 그 작품을 쓰려면 임진왜란에 대한 소설을 먼저 끝내야 한다. 4500매 정도 분량인데 1/4은 연재를 해서 끝냈고, 내년까지 마저 끝내야 한다. 임진왜란 이야기도 굉장히 좋은데, 뭐가 좋은가 하면, 막 설명해줄 때(웃음).

산문에 대해서 얘길 해보자면, 소설가 김연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다. 글 쓸 때 몸과 마음의 자세도 달라지나? 산문은 노력 안 하고 그냥 술술 쓴다. 그리고 글량에 따라 시간 견적이 딱 나온다. 심지어 시간을 분산시켜놔도 모으면 그 시간이다. 아무 고통이 없기 때문에 시간만 주면 다 쓸 수 있다. 근데 소설은 견적이 안 나오기 때문에 마감을 지킬 수가 없다. 끝이 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쓰고. 산문을 쓸 때는 즐거운 상태이고, 밝은 내가 나온다. 세상 사람들도 다 나와 같을 거야. 이 얼마나 즐겁냐. 반면 소설은 쓰면 쓸수록 비관적으로 바뀐다. 누군가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비관적이고 어둡다. 두 개를 같이 보면 웃기지.

시기가 겹치면 아침엔 즐겁게 산문 쓰고, 오후엔 어둡게 소설 쓰고 그러면서 아수라 백작처럼 사는 건가? 그렇지. <여행할 권리>는 50매(A4 5장 정도 분량)를 반나절에 다 썼다. 사람들이 이렇게 긍정적인 상태의 글들을 더 좋아하고, 그럴 땐 글을 좀 못 써도 좋아해주고 그런 거 안다. 하지만 소설을 쓸 때는 그럴 수가 없다. 내가 소설을 자전적으로 쓰는 작가였으면 아마 밝은 소설을 썼을 거다. 근데 그렇게는 안 쓰니까.

자전소설은 앞으로도 계획이 없나? 하나 쓸 거다. <뉴욕제과점>을 장편으로 쓸 거다.

고향 김천에서 부모님이 하셨다는 제과점 이름이 그거였나? 그렇다. 나중에 뉴욕에 가서 자유의 여신상을 봐야 한다. 어릴 때 포장지에 조악한 수준의 여신상 그림이 있었거든. 내가 태어나서 인지한 최초의 외국, 동경의 대상이 뉴욕이었다. 3~4살 때였다. 뉴욕에 가면 그때의 내가 떠오르겠지. 그때까지 안 가고 있으려고. 아무튼 뉴욕 때문에 외부 세계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 어릴 때부터 김천에서 죽을 것 같진 않더라. 지금도 낙향, 귀농 이런 거 되게 싫어한다. 시골 싫어하고, 전원주택 이런 거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산이 너무 좋다. 신도시고 문명의 이기도 많고 24시간 카페도 있고(웃음).

설마 올해 안에 또 책을 낼 계획이 있나? 어휴, 그랬다간 매장 당할 것 같다.

신간 나올 때마다 ‘이분 요새 밥 먹고 글만 쓰시나’ 했다. 밥 먹고 글만 쓴다. 진실은 의외로 농담 속에 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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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한국계 입양아 카밀라는 친어머니의 흔적을 좇아 경남 어느 마을에 이른다. 마을 사람들은 어딘가 미심쩍은 태도다. 결국 그녀는 어머니가 여고 시절 자신을 낳고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그러나 죽음의 원인은 숱한 비밀과 거짓말, 오해에 뒤덮여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2 지지 않는다는 말 소문난 달리기광인 김연수가 달리기를 통해 얻은 성찰들을 담은 산문집이라고 하는데, 실은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의 인생 마디마디에 붙여둔 북마크를 핑계김에 한데 모은 느낌이다. 특유의 담담한 시선과 유머감각, 아름다운 문장들이 페이지마다 빛을 발한다.

3 원더보이 <밤은 노래한다> 이후 4년 만에 선보인 장편소설. 2008년 봄 청소년 문예지 <풋>에 연재하다가 중단했던 소설을 이어 쓴 것이다. 주인공은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생긴다. 초능력을 가진 원더보이의 성장담이 발랄한 문체로 전개된다.

4 세계의 끝 여자친구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쓴 단편 9개를 모은 소설집. 소통과 진실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것이 꼭 부정과 절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생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가 오히려 따뜻한 위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들. ‘김연수 입문서’로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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